그림자
안데르센 동화
햇살이 반짝이는 어느 더운 나라에, 아주 똑똑한 학자 아저씨가 살고 있었어요. 아저씨는 창문가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죠. 어느 날 저녁, 아저씨는 발코니에 나갔어요. "와, 내 그림자가 길기도 하다!" 아저씨는 자기 그림자를 보며 말했어요.
바로 그때, 맞은편 집 창문이 살짝 열리더니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그 집에는 예쁜 꽃들도 가득했죠. "그림자야, 저 집에 뭐가 있는지 살짝 보고 오지 않을래?" 학자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그림자가 스르륵 벽을 타고 맞은편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어? 진짜 갔네?" 아저씨는 깜짝 놀랐지만, 곧 돌아오겠지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림자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대신 학자 아저씨에게는 아주 작고 희미한 새 그림자가 생겼답니다. 여러 해가 흘렀어요. 학자 아저씨는 조금 가난해졌지만 여전히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죠.
어느 날 밤,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어요. 문을 열어보니, 아주 멋지고 키가 큰 신사가 서 있었어요. 옷도 번쩍번쩍, 얼굴도 환했죠. "누구신가요?" 학자 아저씨가 물었어요.
신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어요. "나를 모르겠나? 내가 바로 자네의 옛날 그림자일세!"
학자 아저씨는 눈이 동그래졌어요. "네가… 내 그림자라고?"
그림자는 정말로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어요! 게다가 아주 큰 부자가 되어 있었죠.
그림자는 학자 아저씨에게 말했어요. "이제 내가 아주 유명해졌으니, 자네가 내 그림자가 되어주면 어떻겠나?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네."
학자 아저씨는 처음에는 싫다고 했어요. "내가 왜 네 그림자가 돼야 하지?"
하지만 그림자는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여행을 약속했어요. 가난했던 학자 아저씨는 결국 그림자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났어요. 사람들은 멋진 신사(원래 그림자)에게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그 뒤를 따르는 학자 아저씨(이제 그림자의 그림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림자는 학자 아저씨에게 말했어요. "자네는 내 그림자니까, 항상 내 뒤에 조용히 있도록 하게." 학자 아저씨는 조금 슬펐지만 어쩔 수 없었죠.
어느 날, 그들은 아름다운 공주님이 사는 궁궐에 도착했어요. 공주님은 똑똑하고 당당한 그림자(신사)에게 첫눈에 반했답니다. 그림자도 공주님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
그런데 공주님이 물었어요. "신사분은 정말 멋지신데, 혹시 그림자가 없으신가요? 당신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그러자 그림자는 학자 아저씨를 가리키며 태연하게 말했어요. "아, 저기 제 뒤에 있는 것이 바로 제 그림자랍니다. 좀 특별하죠?"
공주님은 그 말을 믿었어요.
학자 아저씨는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공주님에게 다가가 말하려고 했어요. "공주님, 사실은 제가 진짜 사람이고, 저 신사가 제 그림자였어요!"
하지만 공주님은 학자 아저씨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림자가 크게 화를 냈죠. "저런! 내 그림자가 미쳤나 보군! 당장 저 자를 어두컴컴한 방에 가두어라!"
결국 학자 아저씨는 슬프게 끌려가 감옥에 갇히고 말았어요.
그리고 얼마 후, 원래 그림자였던 신사는 아름다운 공주님과 결혼해서 아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가엾은 학자 아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짜 자기 모습을 되찾을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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