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판을 스쳐간 강풍

    안데르센 동화
    마을에 커다란 소동이 벌어졌어요. 쌩쌩, 윙윙! 무시무시한 바람이 온 동네를 뒤흔들었거든요. 가게 앞에 걸려 있던 간판들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양복점의 커다란 가위 모양 간판, 염색집의 알록달록 예쁜 천 조각 간판, 담배 가게 아저씨가 파이프를 물고 있는 간판, 푸줏간의 통통한 돼지 그림 간판, 빵집의 맛있는 빵 모양 간판, 그리고 이발소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삼색 기둥 간판까지! 모두 길바닥에 나뒹굴며 한데 모이게 되었죠.

    "아이고, 이게 무슨 난리람!"
    가위 간판이 뾰족한 날을 부딪치며 말했어요. "내가 제일 중요한 간판인데, 이렇게 길바닥에 뒹굴다니!"

    그러자 알록달록 천 조각 간판이 팔랑거리며 대꾸했어요. "흥! 칙칙한 세상에 예쁜 색을 입히는 건 바로 나라고! 내가 없으면 얼마나 심심하겠어?"

    담배 가게 아저씨 간판도 파이프를 문 채로 뻐끔거리며 말했어요. "힘든 하루 끝에 편안한 휴식을 주는 건 나지! 어른들은 나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꿀꿀! 맛있는 고기를 책임지는 건 바로 나, 돼지 간판이지!" 푸줏간 간판이 씩씩하게 외쳤어요.

    빵집 간판도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듯 말했어요. "따끈따끈 맛있는 빵! 배고픈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건 바로 나야!"

    이발소의 삼색 기둥 간판은 빙글빙글 돌고 싶어 몸을 꿈틀거리며 말했어요. "깔끔한 머리 모양과 동네의 재미있는 소식은 모두 나를 통해 시작된다고!"

    간판들은 저마다 자기가 최고라고 떠들썩하게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신이 났죠.

    그때, 똑똑해 보이는 한 학생이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봤어요. "와, 간판들이 꼭 살아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정말 재미있는 연극 같다!" 학생은 신기해하며 중얼거렸죠.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한 분이 빙긋 웃으며 말했어요. "허허, 저 간판들은 그냥 물건이 아니란다. 저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지. 오늘 밤 폭풍 덕분에 다 같이 모여 수다를 떠는 게야."

    할아버지는 학생에게 간판 하나하나에 얽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가위 간판은 솜씨 좋은 재단사 아저씨의 자랑이었고, 알록달록 천 간판은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내는 염색 장인의 꿈이었죠. 간판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며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다음 날 아침, 바람은 멎고 해가 쨍쨍 떴어요. 사람들은 떨어진 간판들을 다시 정성껏 닦아 제자리에 걸었죠.

    간판들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어젯밤 신나게 떠들던 기억은 마음속에 간직했을 거예요. 어쩌면 다음 폭풍우 치는 밤에 또다시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르죠? 그때는 또 어떤 새로운 간판 친구가 함께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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