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안데르센 동화
어느 조용한 밤, 작은 다락방 창문으로 달님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어요. 그 방에는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화가 아저씨가 살고 있었죠. 화가 아저씨는 그림 그릴 종이도, 물감도 거의 다 떨어져서 시무룩해 있었어요.
그때 달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화가 아저씨, 제가 오늘 밤 본 아주 멋진 그림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제 이야기는 눈으로 보는 그림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려질 거예요."
화가 아저씨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달님은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저 멀리 아주 더운 나라, 인도에서는요, 예쁜 소녀가 강가에 작은 등불을 띄우는 걸 봤어요. 소녀는 멀리 떠난 오빠가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라며 등불에 소원을 담아 보냈답니다. 반짝이는 등불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 그게 바로 오늘의 첫 번째 그림이에요."
화가 아저씨는 가만히 눈을 감고 달님이 들려주는 풍경을 상상했어요.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 마음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죠.
"두 번째 그림은 아주 추운 북쪽 나라 이야기예요." 달님이 말을 이었어요. "얼음으로 만든 집 이글루 안에서, 털옷을 따뜻하게 껴입은 아이들이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어요. 창밖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집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차 따뜻했답니다. 그 모습도 참 예쁜 그림이었죠."
화가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또 어떤 밤에는 아주 큰 도시의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어요." 달님은 세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수많은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는데, 어떤 창문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있었고, 또 다른 창문에서는 한 아이가 잠들기 전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죠.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답니다. 그것도 아주 멋진 그림이었어요."
그렇게 달님은 매일 밤 화가 아저씨를 찾아와 세상 곳곳에서 본 신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어요. 화가 아저씨는 물감도, 붓도 없었지만, 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덕분에 마음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그림들이 가득 쌓여갔답니다.
그래서 화가 아저씨의 다락방에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림 없는 그림책'이 생겼어요. 달빛 아래에서만 펼쳐지는, 마음으로 보는 아주 특별한 그림책이었죠. 화가 아저씨는 더 이상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어요. 달님이 선물한 이야기 그림들 덕분에 매일 밤이 기다려졌으니까요.
1960 조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