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양초
안데르센 동화
눈송이가 솜사탕처럼 펑펑 쏟아지던 아주 아주 추운 겨울밤이었어요.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왔지만, 조그만 여자아이는 맨발로 차가운 길 위를 걷고 있었죠. 소녀의 작은 바구니에는 성냥이 가득했지만, 아무도 소녀의 성냥을 사주지 않았어요. "성냥 사세요! 따뜻한 성냥이요!"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외쳤지만, 사람들은 따뜻한 집으로 서둘러 들어갈 뿐이었어요.
해가 지고 밤이 되자, 바람은 더 차가워졌어요. 소녀는 너무너무 추웠지만,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해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집에 가면 무서운 아빠에게 혼날 게 뻔했거든요. 소녀는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건물과 건물 사이, 작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아, 너무 추워. 성냥 한 개비만 켜볼까?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겠지?"
소녀는 조심스럽게 성냥 하나를 꺼내 벽에 '칙!' 하고 그었어요. 와아! 밝은 불꽃이 피어오르자, 눈앞에 커다란 난로가 나타났어요.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은 정말 따뜻했어요. 소녀는 차가운 발을 난로 쪽으로 쭉 뻗으며 미소 지었죠. "아, 따뜻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성냥불이 '픽!' 하고 꺼지자, 따뜻한 난로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어요. 다시 차가운 바람만 쌩쌩 불어왔죠.
소녀는 아쉬운 마음에 성냥 하나를 더 켰어요. 이번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찬 식탁이 나타났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구운 거위도 있었죠. 거위가 접시에서 폴짝 뛰어내려 소녀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우와, 맛있겠다!" 소녀가 군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또다시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어요. 맛있는 음식들도 모두 사라지고, 차가운 벽돌담만 보였답니다.
"한 번만 더…" 소녀는 세 번째 성냥을 켰어요. 그러자 눈앞에 아주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났어요! 트리에는 수천 개의 반짝이는 촛불이 달려 있었고, 예쁜 인형과 장식들이 가득했어요. 소녀가 트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성냥불이 스르르 꺼지고 말았어요. 하지만 트리의 촛불들은 하늘로 올라가 별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어요.
그때, 하늘에서 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어요. "아, 별똥별이다! 할머니가 별똥별이 떨어지면 누군가 하늘나라로 가는 거라고 하셨는데…" 소녀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할머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소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분이었거든요.
소녀는 할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남은 성냥을 한꺼번에 묶어 불을 붙였어요. "할머니! 저도 데려가세요!" 불꽃이 환하게 타오르자, 정말로 할머니가 나타났어요! 할머니는 예전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죠.
"할머니, 저를 데려가 주세요. 성냥불이 꺼지면 할머니도 사라지실 거잖아요. 따뜻한 난로처럼, 맛있는 음식처럼, 예쁜 크리스마스트리처럼요!" 소녀는 울먹이며 할머니에게 매달렸어요. 할머니는 소녀를 꼭 안아주셨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밝은 빛에 휩싸여 하늘로, 하늘로 훨훨 올라갔어요. 그곳에는 추위도, 배고픔도, 슬픔도 없는 아주아주 행복한 곳이었답니다.
다음 날 아침, 새해가 밝았어요. 사람들은 건물 구석에서 작은 소녀가 잠든 듯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소녀의 뺨은 발그레했고,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어려 있었죠. 소녀의 작은 손에는 다 타버린 성냥개비들이 쥐어져 있었어요. "쯧쯧, 불쌍하게도. 성냥불이라도 쬐려다 추위에 잠들었나 보군."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는지,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 행복하게 하늘나라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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