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두르의 죽음

    북유럽 신화
    아스가르드라는 신들의 나라에, 아주 특별한 신이 살았어요. 그의 이름은 발두르였죠. 발두르는 햇살처럼 밝고, 꽃처럼 아름다우며,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는 신이었어요. 그래서 신들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것들이 발두르를 사랑했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인 프리그 여신은 발두르를 세상 그 누구보다 아꼈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발두르는 아주 무서운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꿈속에서 자꾸만 자신이 다치거나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이 이야기를 들은 프리그는 너무나 걱정이 되었어요. "내 아들 발두르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안 돼!" 프리그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모든 것들에게 간절히 부탁했어요. "나무야, 돌멩이야, 동물들아, 심지어 병균들아! 내 아들 발두르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세상 모든 것들은 발두르를 사랑했기에 기꺼이 약속했어요. "네, 프리그님! 절대로 발두르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단 하나, 아주 작고 여린 겨우살이에게만은 프리그가 약속을 받지 않았어요. "에이, 저렇게 어리고 부드러운 것이 어떻게 발두르를 해칠 수 있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든요.

    그 후로 신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냈어요. 발두르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칼을 휘두르거나, 무거운 것을 떨어뜨려도 발두르는 전혀 다치지 않았거든요! 모든 것이 발두르를 해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신들은 이 놀이를 하며 깔깔 웃었고, 발두르도 함께 즐거워했어요.

    하지만 이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장난꾸러기 신 로키였어요. 로키는 모두가 발두르만 좋아하는 것 같아 샘이 났죠. 로키는 꾀를 내어 늙은 할머니로 변장하고 프리그에게 다가가 물었어요. "프리그님, 발두르님은 어쩜 그렇게 무엇에도 다치지 않으시는 건가요? 정말 대단해요!" 프리그는 조금 우쭐해져서 비밀을 살짝 말해주었어요. "온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아들을 해치지 않기로 약속했거든요. 아, 딱 하나 아주 작은 겨우살이만 빼고요. 그건 너무 어려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이 말을 들은 로키는 눈을 반짝였어요. 로키는 몰래 숲으로 가서 겨우살이 가지를 꺾어 와 작고 뾰족한 창처럼 만들었어요. 그리고 신들이 모여 발두르에게 물건을 던지며 놀고 있는 곳으로 갔죠. 그곳에는 발두르의 쌍둥이 형제이자 눈이 먼 신 호드르가 구석에 혼자 서 있었어요. 호드르는 앞을 보지 못해서 놀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로키가 호드르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어요. "호드르님, 왜 혼자 계세요? 당신도 발두르에게 무언가를 던져 축복해주고 싶지 않으세요?" 호드르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나는 앞을 보지 못해서 어디로 던져야 할지 모르네." 로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겨우살이 가지를 호드르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어요. "걱정 마세요. 제가 방향을 잡아드릴게요. 이걸 발두르에게 던져보세요. 모두가 즐거워할 거예요."

    호드르는 로키가 시키는 대로 겨우살이 가지를 힘껏 던졌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겨우살이 가지는 정확히 발두르의 가슴에 명중했고, 발두르는 "악!" 소리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순식간에 신들의 웃음소리가 멈추고, 아스가르드는 깊은 슬픔에 잠겼어요. 발두르가 죽자 세상의 빛이 사라진 것 같았죠. 프리그는 땅을 치며 통곡했고, 모든 신들이 눈물을 흘렸어요.

    발두르의 또 다른 형제인 헤르모드는 용감하게 죽은 자들의 세계인 헬헤임으로 떠났어요. 헬헤임의 여왕 헬에게 발두르를 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죠. 헬은 헤르모드의 간청에 이렇게 대답했어요. "만약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들이 발두르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면, 그를 돌려보내 주겠다. 단 하나라도 울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발두르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

    신들은 이 소식을 온 세상에 알렸어요. 그러자 사람들, 동물들, 나무들, 심지어 돌멩이와 쇠붙이까지도 발두르를 위해 눈물을 흘렸어요. 온 세상이 눈물바다가 되었죠.

    하지만 딱 한 존재만이 울지 않았어요. 동굴 속에 살고 있는 토크라는 늙은 거인 여자였죠. 신들이 찾아가 발두르를 위해 울어달라고 부탁했지만, 토크는 차갑게 말했어요. "산 자든 죽은 자든 내게 무슨 상관이람? 발두르가 헬헤임에 있든 말든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겠다! 헬이 가진 것은 헬이 그냥 갖게 둬!"

    사실 이 토크 할머니는 로키가 또다시 변장한 모습이었어요. 로키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단 하나의 눈물이 부족해서, 결국 발두르는 헬헤임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아스가르드의 기쁨과 빛이었던 발두르의 죽음은 그렇게 로키의 장난 때문에 영원한 슬픔으로 남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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