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
중국 우화
햇살 좋은 어느 날, 깊은 숲 속에 배가 몹시 고픈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어요.
"아, 배고파. 뭐 맛있는 거 없나?"
그때, 통통하게 살찐 여우 한 마리가 폴짝폴짝 신나게 지나가는 거예요.
호랑이는 "옳거니!" 하고 쏜살같이 달려들어 여우를 덥석! 붙잡았어요.
"크아앙! 너 오늘 아주 잘 만났다. 맛있게 먹어주마!"
깜짝 놀란 여우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재빨리 머리를 썼어요.
"호랑이님, 잠깐만요! 저를 잡아먹으면 큰일 나요!"
호랑이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어요. "뭐라고? 내가 널 먹는데 왜 큰일이 나?"
여우는 아주 중요한 비밀이라도 말하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어요.
"사실... 하늘의 임금님께서 저를 이 숲의 모든 동물을 다스리는 왕으로 임명하셨거든요. 저를 잡아먹는 건 하늘의 임금님 명령을 어기는 거예요!"
호랑이는 코웃음을 쳤어요. "네가? 이 쬐끄만 녀석이 숲의 왕이라고? 하하하, 웃기지 마!"
여우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못 믿으시겠다면, 제 뒤를 따라와 보세요. 숲 속 동물들이 저를 보고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직접 보여드릴게요. 만약 동물들이 저를 무서워하지 않으면 그때 저를 잡아먹으셔도 괜찮아요."
호랑이는 '흠, 저 녀석이 무슨 꿍꿍이지?' 생각했지만, 궁금하기도 해서 여우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여우는 거만하게 가슴을 쫙 펴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고,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그 뒤를 따랐어요.
숲 속 길을 가는데, 저 멀리서 풀을 뜯던 토끼들이 여우를 보더니, 그 뒤에 따라오는 커다란 호랑이를 보고는 "으악! 호랑이다!" 소리치며 굴속으로 쏙 숨어버렸어요.
조금 더 가니, 사슴 가족이 물을 마시고 있었어요. 사슴들도 여우 뒤의 호랑이를 보고는 뿔이 빠져라 도망쳤죠.
멧돼지 아저씨도, 너구리 아줌마도, 다람쥐 꼬마들도 모두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는 혼비백산해서 달아났어요.
호랑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와, 정말이잖아? 저 조그만 여우를 보고 숲 속 동물들이 다 도망가네! 진짜 하늘이 내린 왕인가 봐!'
호랑이는 여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하늘 임금님께 혼날까 봐 무서워져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조용히 사라졌답니다.
여우는 호랑이가 사라진 것을 보고 속으로 '휴, 살았다!' 하며 씨익 웃었어요.
사실 동물들은 여우가 무서워서 도망간 게 아니라, 여우 뒤에 있는 진짜 무서운 호랑이 때문에 도망간 거였는데 말이에요!
꾀 많은 여우는 그렇게 호랑이의 힘을 빌려 위기를 넘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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