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랑클
그림 동화
옛날 옛날도 아니고, 아주 먼 옛날도 아닌 어느 멋진 왕국에, 눈처럼 하얀 피부에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공주님이 살고 있었어요. 이 공주님은 어찌나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지, 숨바꼭질만 했다 하면 아무도 공주님을 이길 수 없었답니다.
왕은 이런 공주님이 무척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어요. "우리 공주와 결혼할 사람은 보통 똑똑해서는 안 되겠군." 왕은 고민 끝에 온 나라에 이렇게 알렸어요. "누구든 우리 공주에게서 완벽하게 숨는 사람에게 공주와 결혼시키겠다!"
이 소식을 듣고 수많은 용감한 왕자님들과 똑똑한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그들은 나무 뒤에도 숨어보고, 커다란 통 속에도 들어가 보고, 심지어 굴뚝 청소부로 변장하기도 했지만, 공주님은 언제나 "찾았다!" 하고 외치며 그들을 찾아냈죠. 모두들 공주님의 날카로운 눈썰미에 혀를 내둘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할아버지 한 분이 왕궁 문을 두드렸어요. 할아버지의 이름은 링클랭크였죠. "제가 한번 공주님과 숨바꼭질을 해보겠습니다." 링클랭크 할아버지가 말하자, 사람들은 모두 키득거렸어요. 저렇게 느릿느릿한 할아버지가 어떻게 공주님을 피할 수 있겠냐고요.
첫 번째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어요. 링클랭크 할아버지는 정원에 있는 커다란 양배추 잎사귀 사이로 쏙 숨었어요. 하지만 공주님은 정원을 한 바퀴 쓱 둘러보더니 양배추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링클랭크 할아버지, 거기 계시는군요!" 할아버지는 멋쩍게 웃으며 나왔죠.
두 번째로 할아버지는 아주 높은 교회 첨탑 꼭대기에 작은 먼지처럼 착 달라붙어 숨었어요. 공주님은 망원경으로 하늘을 살피더니, "아하! 저기 뾰족한 지붕 위에 계시네요!" 하고 또다시 찾아냈어요.
마지막 기회였어요. 링클랭크 할아버지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숨기로 했어요. 바로 아주 작고 예쁜 달걀로 변신한 거예요! 아침 식사 시간, 공주님은 식탁 위에 놓인 그 예쁜 달걀을 보고는 "어머나, 오늘 달걀은 유난히 예쁘네?" 하며 맛있게 꿀꺽 삼켜버렸어요. 공주님은 그 달걀이 링클랭크 할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몰랐죠.
공주님은 온 궁궐을 다 뒤졌지만 할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도대체 어디에 숨으신 걸까?" 공주님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어요. 바로 공주님 뱃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나 여기 있다, 공주야! 네 뱃속에 있지롱!" 공주님은 깜짝 놀라 배를 어루만졌어요.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공주님은 링클랭크 할아버지와 결혼해야만 했어요.
링클랭크 할아버지는 공주님을 데리고 아주 멀리 있는 유리 산꼭대기의 성으로 갔어요. 성은 온통 유리로 만들어져 반짝반짝 빛났지만, 공주님은 너무나 외롭고 슬펐어요. 게다가 할아버지는 공주님에게 매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라고 시켰죠.
어느 날, 링클랭크 할아버지가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성을 나섰어요. 공주님은 이때다 싶어 성 안을 둘러보다가 다락방에서 아주 긴 마법 밧줄을 발견했어요. 공주님은 밧줄을 창문에 단단히 묶고, 반짝이는 보석 몇 개를 주머니에 챙겨 조심조심 성벽을 내려왔어요. 그리고 침대에는 밀짚으로 만든 인형을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 마치 자신이 자는 것처럼 꾸며 놓았죠.
얼마 후, 링클랭크 할아버지가 돌아와 문을 두드리며 외쳤어요. "공주야, 문 열어라! 지금 뭐하고 있니?" 아무 대답이 없자 할아버지는 문을 확 열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침대에는 밀짚 인형만 쿨쿨 자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이런! 내가 속았구나!"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펄펄 뛰며 공주님을 뒤쫓기 시작했어요.
공주님은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달렸어요. 링클랭크 할아버지가 거의 다 쫓아왔을 때, 공주님은 머리빗을 뒤로 휙 던졌어요. 그러자 빗이 순식간에 커다랗고 빽빽한 가시나무 숲으로 변했답니다! 할아버지는 숲을 헤치고 나오느라 한참이나 낑낑댔어요.
다시 할아버지가 가까이 쫓아오자, 공주님은 작은 손거울을 땅에 탁 던졌어요. 그러자 거울이 미끌미끌하고 높은 유리 산으로 변했어요! 할아버지는 산을 넘으려다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또 시간을 허비했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또다시 턱밑까지 쫓아왔을 때, 공주님은 작은 솔을 던졌어요. 그러자 솔이 커다란 호수로 변해 할아버지의 길을 막아버렸어요.
그사이 공주님은 마침내 사랑하는 아빠가 계신 왕궁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링클랭크 할아버지는 호수 앞에서 씩씩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자기의 유리 산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대요. 그 후로 공주님은 다시는 아무하고나 함부로 숨바꼭질 내기를 하지 않았고, 더욱 지혜롭고 용감한 공주로 자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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