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두 명의 사냥꾼

    그림 동화
    옛날 어느 나라에, 아버지를 아주 사랑하는 왕자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왕자님에게는 이미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예쁜 공주님이 있었답니다. 두 사람은 곧 결혼할 사이였죠.

    그러던 어느 날, 왕자님의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어요. 임금님은 왕자님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어요. "얘야, 내가 정해준 다른 나라 공주와 꼭 결혼해야 한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왕자님은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첫 번째 공주님은 너무너무 슬펐지만,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공주님은 자신과 똑 닮은 열한 명의 아가씨들을 불렀어요. 그리고 모두 똑같은 멋진 사냥꾼 옷을 입고, 말 타는 법과 활 쏘는 법을 열심히 연습했죠. "우리는 왕자님 곁으로 가는 거야!" 공주님은 씩씩하게 말했어요.

    열두 명의 사냥꾼들은 말을 타고 왕자님의 성으로 갔어요. 왕자님은 늠름한 사냥꾼들을 보고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답니다. "훌륭하군! 오늘부터 나와 함께 사냥을 하도록 하자!" 하지만 왕자님은 그중 한 명이 자신이 사랑했던 공주님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왕자님에게는 아주 똑똑한 말하는 사자가 한 마리 있었어요. 사자는 사냥꾼들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죠. "음... 왕자님, 저 사냥꾼들 뭔가 좀 이상해요. 꼭 여자들 같아요." 왕자님은 "에이, 설마!" 하고 웃어넘겼어요.

    사자는 포기하지 않고 왕자님에게 몰래 말했어요. "왕자님, 그럼 시험을 해봐요. 복도에 완두콩을 한 움큼 뿌려보세요. 남자들은 신경 안 쓰고 우당탕탕 밟고 지나가지만, 여자들은 조심조심 주우려 할 거예요."

    하지만 충성스러운 하인 하나가 이 계획을 엿듣고 공주님에게 살짝 알려주었어요. 공주님은 다른 사냥꾼들에게 말했죠. "얘들아, 복도에 완두콩이 뿌려져 있을 거야. 그걸 보면 일부러 밟고 지나가야 해, 알았지?"

    정말로 사냥꾼들은 복도에 뿌려진 완두콩을 일부러 쿵쿵 밟고 지나갔어요. 어떤 콩은 데구루루 굴러가기도 했죠. 왕자님은 "거 봐, 사자야. 남자들이 맞지 않느냐!" 하며 웃었어요. 사자는 머쓱해졌지만,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았어요.

    며칠 뒤, 사자가 다시 왕자님에게 속삭였어요. "왕자님, 이번에는 사냥꾼들이 기다리는 방에 예쁜 물레들을 여러 개 놓아보세요. 여자들은 물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만져보거나 감탄할 거예요."

    공주님은 또다시 이 계획을 미리 알게 되었죠. "얘들아, 이번엔 방에 물레가 있을 거래. 절대 쳐다보거나 관심을 보이면 안 돼! 그냥 못 본 척 지나가는 거야!"

    사냥꾼들은 물레가 가득한 방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물레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요. 마치 그곳에 물레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왕자님은 이제 사자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사자야, 네가 틀렸다. 저들은 틀림없는 용감한 사냥꾼들이다."

    시간이 흘러 왕자님이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다른 나라 공주님과 결혼하는 날이 되었어요. 온 성안이 잔치 준비로 떠들썩했죠. 첫 번째 공주님은 이 모습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죠. 결국 공주님은 결혼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어요.

    왕자님은 깜짝 놀라 쓰러진 사냥꾼에게 달려갔어요. "괜찮으냐! 누가 좀 도와다오!" 왕자님이 사냥꾼을 부축하려다, 사냥꾼의 손에서 장갑이 벗겨졌어요. 그러자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어요. 그건 바로 왕자님이 예전에 사랑했던 공주님에게 선물했던 반지였어요!

    그 순간, 왕자님은 쓰러진 사냥꾼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어요. 아!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바로 그 공주님이었어요! 왕자님은 모든 것을 기억해냈어요. 자신이 얼마나 이 공주님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 때문에 얼마나 미안했는지를요.

    왕자님은 공주님을 끌어안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 나는 이 공주와 결혼하겠다!"

    결혼식을 기다리던 두 번째 공주님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왕자님의 진심을 알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왕자님은 두 번째 공주님에게 많은 선물을 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두 번째 공주님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었답니다.

    결국 왕자님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첫 번째 공주님과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물론, 똑똑한 말하는 사자도 함께 말이에요! 사자는 그제야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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