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겨졌다고 잊혀진 것은 아니다

    안데르센 동화
    창밖에는 거센 비바람이 쌩쌩 불던 밤이었어요. 따뜻한 벽난로 옆에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시인이 살고 있었죠. 할아버지는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이런 궂은 날씨에 누구일까?" 할아버지는 궁금해하며 문을 열었어요.
    문 앞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서 있었어요. 아이는 비에 흠뻑 젖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죠.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요.

    "아이고, 얘야! 어서 들어오렴."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 아이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어요.
    따뜻한 벽난로 옆에 아이를 앉히고,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어요. 그리고 따뜻한 우유 한 잔과 맛있는 사과도 내주었죠.
    아이는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아삭아삭 먹더니 금세 얼굴이 발그레해졌어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아이가 생긋 웃으며 말했어요.
    "괜찮다, 얘야. 그런데 너는 누구니? 이렇게 험한 밤에 혼자서 어딜 가던 중이었니?"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저는 사랑의 신 큐피드예요! 제 작은 활과 화살, 보이시죠?"
    정말 아이의 등에는 조그만 활과 화살통이 매달려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빙그레 웃었어요.
    "호호, 네가 그 유명한 큐피드구나! 그런데 네 화살은 비에 젖어서 잘 안 나갈 것 같은데?"
    큐피드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어요. "한번 시험해 볼까요?"
    그러더니 갑자기 할아버지의 가슴을 향해 작은 화살을 슝! 쏘았어요.

    "아야!" 할아버지는 가슴이 살짝 따끔했어요. 하지만 아프기보다는 마음이 간질간질 이상한 기분이 들었죠.
    "이런, 장난꾸러기 녀석!"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어요.
    큐피드는 깔깔 웃으며 "할아버지, 이제 제 화살은 잘 마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하고는 창문으로 휙 날아가 버렸어요.

    그 후로 큐피드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몰래 사랑의 화살을 쏘기 시작했어요.
    공원에서 책을 읽던 아가씨에게도 슝! 씩씩하게 걷던 젊은이에게도 슝! 심지어 꾸벅꾸벅 졸던 강아지에게도 살짝 콩!
    화살을 맞은 사람들은 모두 가슴이 두근거리고, 갑자기 누군가가 아주 멋져 보이거나 예뻐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할아버지 시인은 가끔 가슴이 따끔거릴 때마다 그날 밤의 작은 큐피드를 떠올렸어요.
    "그 녀석, 정말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야. 하지만..." 할아버지는 미소 지었어요.
    "사랑이란 건 그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버리곤 하지. 우리가 애써 잊으려고 해도, 그 따끔한 기억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맞아요. 큐피드의 화살처럼, 어떤 기억이나 감정들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을 뿐,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랍니다. 마치 숨바꼭질하는 친구처럼, 언젠가 다시 "짠!" 하고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숨어있다고 해서 없어진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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