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가로등
안데르센 동화
어느 조용한 동네 길모퉁이에 아주 오래된 가로등 할아버지가 서 있었어요. 밤마다 따뜻한 불빛으로 길을 밝혔죠. 가로등 할아버지는 수많은 밤을 기억했어요. 깔깔 웃으며 지나가는 아이들, 손을 꼭 잡은 다정한 사람들,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어른들의 모습까지 모두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님, 동그란 달님과도 아주 친한 친구였답니다.
하지만 가로등 할아버지는 요즘 조금 슬펐어요. "곧 새롭고 더 밝은 가로등이 오면 나는 쓸모없어지겠지?" 하고 걱정했거든요. "아, 내가 보았던 그 모든 즐거운 순간들, 반짝이던 별들과 달님과의 속삭임도 다 잊혀지겠지."
어느 날 밤, 슝슝 바람이 불어와 가로등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어요. "가로등아, 왜 그렇게 시무룩하니?"
가로등 할아버지가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자, 바람이 말했어요. "너무 슬퍼하지 마. 내가 너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줄게. 네가 간직하고 싶은 모든 기억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거야."
가로등 할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만약 내가 다른 무엇이 된다면, 지금 이 가로등으로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잊어버릴지도 몰라. 나는 그냥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 가로등 할아버지는 바람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어요.
며칠 뒤, 정말로 사람들이 와서 가로등 할아버지를 길에서 내려놓았어요. "아, 이제 정말 끝이구나." 가로등 할아버지는 눈을 꼭 감았죠.
그때, 마음씨 좋은 경비원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가로등 할아버지를 발견했어요. "어머, 이 오래된 가로등, 정말 멋지네요! 우리 집으로 가져가요."
경비원 부부는 가로등 할아버지를 깨끗하게 닦고, 예쁜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그 안에는 작은 초를 넣어 불을 밝혔죠. 방 안이 은은하고 따뜻한 빛으로 가득 찼어요.
가로등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어요! "와, 나는 여전히 세상을 밝힐 수 있구나!"
비록 길 위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집 안에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빛이 된 거예요. 가로등 할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답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람이 준 가장 멋진 선물이었어요.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해서 빛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밤하늘의 별님과 달님도 창문 너머로 가로등 할아버지를 보며 방긋 웃는 것 같았어요. 가로등 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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