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아다니는 가방

    안데르센 동화
    옛날도 아니고 아주 먼 옛날도 아닌 어느 날, 엄청난 부자 아빠를 둔 아들이 있었어요. 아빠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물려받았죠. "와, 신난다!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어!" 아들은 매일매일 신나는 파티를 열고, 반짝이는 새 옷을 사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어요.

    하지만 돈이라는 건 쓰면 쓸수록 줄어드는 법!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돈은 똑 떨어지고 말았어요. "어이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낡은 잠옷 한 벌과 해진 슬리퍼 한 켤레뿐이었죠. 친구들은 모두 그를 떠나버렸고, 딱 한 명의 친구가 낡고 커다란 가방 하나를 보내주었어요. "이게 뭐야? 너무 낡았잖아!" 아들은 투덜거렸지만, 달리 할 일이 없어 가방 안으로 쏙 들어가 보았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아들이 가방 안에 들어가 앉자마자 가방이 "두둥실!" 하고 떠오르는 거예요! "우와! 날아간다!" 가방은 지붕 위로, 구름 위로 훨훨 날아올랐어요. 아들은 깜짝 놀랐지만 곧 신이 났죠.

    가방은 멀고 먼 동쪽 나라, 터키라는 곳에 "쿵!" 하고 내려앉았어요. 아들은 얼른 가방을 숲 속에 잘 숨겨두고, 시장으로 가서 터키 사람들이 입는 멋진 옷을 사 입었어요. 터키 옷을 입으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죠.

    마을을 걷다가 아들은 아주 높은 탑에 예쁜 공주님이 갇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주님은 터키의 신과 결혼할 운명이라는 예언 때문에 탑에서 나올 수 없었대요. "흐음, 재미있겠는데?" 아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숨겨둔 가방을 타고 "슝!" 하고 공주님의 방 창문으로 날아갔어요.

    공주님은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아들이 자신을 '이야기의 신'이라고 소개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줄줄 들려주자 금세 마음을 열었어요. 아들은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 부싯깃 통 이야기, 못생긴 아기 오리 이야기 등 온갖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밤마다 공주님에게 들려주었죠. 공주님은 깔깔 웃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면서 아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어요.

    결국 공주님은 아들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고, 아들도 공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공주님이 말하자, 아들도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죠. 왕과 왕비도 아들을 만나보고는 아주 마음에 들어 했어요. "우리 딸과 결혼시키자!"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어요. 아들은 너무너무 신이 나서 온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멋진 불꽃놀이를 준비하기로 했어요. 결혼식 전날 밤, 아들은 날아다니는 가방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펑! 펑! 파바박!" 하고 아름다운 불꽃을 터뜨렸어요. 사람들은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며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죠.

    그런데 바로 그때였어요! "앗, 뜨거!" 불꽃놀이에서 떨어진 작은 불씨 하나가 그만 아들이 타고 있던 가방에 옮겨붙고 말았어요! 가방은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더니 재가 되어 산산조각 나 버렸죠. "안 돼!" 아들은 소리쳤지만 소용없었어요.

    이제 아들은 더 이상 공주님에게 날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공주님은 탑 창가에서 매일매일 아들을 기다렸지만, 그는 다시 나타나지 못했죠. 아들은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되었어요. 하지만 하늘을 나는 신기한 가방도, 사랑하는 공주님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답니다. 공주님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건 아무도 모른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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