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스러운 요한
그림 동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래전 이야기란다. 어느 멋진 왕국에 마음씨 좋은 임금님이 살고 있었는데, 그만 병이 들어 몸져눕게 되었어. 임금님은 하나뿐인 왕자님이 걱정되어 가장 믿음직한 신하, 충직한 요하네스를 불렀지.
"요하네스, 내 아들을 잘 부탁하네. 그리고 한 가지, 성 안의 맨 끝 방, 황금 지붕 공주님의 그림이 있는 방에는 절대 왕자를 데려가지 말게."
요하네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약속했어. "임금님, 걱정 마십시오. 왕자님을 제 목숨처럼 보살피겠습니다."
임금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어린 왕자님은 새로운 임금이 되었어. 요하네스는 늘 왕자님 곁을 지켰지. 어느 날, 왕자님이 성 안을 둘러보다가 물었어.
"요하네스, 저 맨 끝 방은 왜 항상 잠겨 있는 거지?"
요하네스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임금님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말했어. "왕자님, 그 방에는 무서운 것이 있어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호기심이 아주 많았단다. "괜찮아, 내가 임금인데 뭐가 무섭겠어? 어서 열어보게!"
요하네스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어. 방 안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주님의 그림이 걸려 있었지. 바로 황금 지붕 공주님이었어!
그림을 본 순간, 왕자님은 "아!"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단다. 공주님이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거야.
왕자님은 그날부터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자고 공주님 생각만 했어. 요하네스는 그런 왕자님이 너무 안쓰러웠지.
"왕자님, 제가 황금 지붕 공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요하네스는 금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멋진 배를 만들고, 온갖 신기하고 예쁜 물건들을 가득 실었어. 그리고 자신과 부하들을 상인처럼 꾸미고 공주님이 사는 나라로 떠났단다.
공주님의 나라에 도착한 요하네스는 가장 아름다운 금 그릇을 들고 공주님을 찾아갔어.
"공주님, 저희 배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예쁘고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하답니다. 한번 구경하러 오시지 않겠어요?"
공주님은 반짝이는 물건들을 아주 좋아했어. "정말? 그럼 한번 가볼까?"
공주님이 배에 올라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사이, 요하네스는 몰래 뱃머리를 돌려 쌩 하고 출발해 버렸어!
"어머나, 배가 움직이잖아!" 공주님은 깜짝 놀랐지만, 곧 자신을 데리러 온 멋진 왕자님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을 붉혔단다. 왕자님을 만나자마자 공주님도 사랑에 빠졌고, 둘은 곧 결혼하기로 했지.
왕자님과 공주님이 배를 타고 왕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요하네스가 갑판에서 쉬고 있는데, 까마귀 세 마리가 날아와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지.
첫 번째 까마귀가 말했어. "쯧쯧, 왕자님이 뭍에 내리면 멋진 적갈색 말이 다가올 텐데, 그 말을 타면 하늘로 휙 날아가 버릴 거야. 누가 얼른 그 말을 총으로 쏘고, 그 피를 말에 뿌리지 않으면 왕자님은 큰일 나!"
요하네스는 깜짝 놀랐어. 정말로 뭍에 내리자 멋진 적갈색 말이 왕자님에게 다가왔지. 왕자님이 막 말에 오르려는 순간, 요하네스가 "안 됩니다!" 외치며 총을 탕! 쏴서 말을 쓰러뜨렸어.
왕자님은 버럭 화를 냈지. "아니, 이 멋진 말을 왜 쏜 거야, 요하네스!" 요하네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비밀을 말하면 돌이 되어버리니까.
조금 더 가니, 두 번째 까마귀가 또 속삭였어. "저런, 왕궁에 도착하면 왕자님은 멋진 비단 결혼 예복을 입을 텐데, 그 옷은 불처럼 뜨거워서 입자마자 타버릴 거야. 누가 얼른 그 옷을 불에 던져 태우지 않으면 왕자님은 큰일 나!"
왕궁에 도착해 왕자님이 막 결혼 예복을 입으려는 순간, 요하네스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예복을 빼앗아 활활 타는 불 속에 휙 던져버렸어.
왕자님은 이제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 "요하네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결혼식이 끝나고 무도회가 열렸어. 세 번째 까마귀가 창가에서 말했지. "에구머니나, 공주님이 춤을 추다가 갑자기 쓰러질 텐데, 그때 누가 얼른 공주님의 오른쪽 가슴에서 피 세 방울을 뽑아 뱉지 않으면 공주님은 영영 깨어나지 못할 거야."
아니나 다를까, 공주님이 왕자님과 춤을 추다가 갑자기 픽 쓰러졌어. 요하네스는 재빨리 다가가 작은 칼로 공주님의 가슴을 살짝, 아주 살짝 찔러 피 세 방울을 쪽쪽 빨아내 뱉었단다. 그러자 공주님이 다시 눈을 떴지!
하지만 이 모습을 본 왕자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네 이놈, 요하네스! 감히 내 아내에게 무슨 짓이냐! 당장 저놈을 감옥에 가두어라!"
요하네스는 슬픈 얼굴로 말했어. "왕자님, 저는 곧 돌이 될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모든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요하네스는 까마귀들의 이야기와 자신이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전부 털어놓았어. 이야기를 마친 요하네스는 그 자리에서 차가운 돌 조각상으로 굳어버렸단다. 꽝!
왕자님과 공주님은 모든 사실을 알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후회했지. "오, 충직한 요하네스! 우리가 너를 오해했구나!"
왕자님은 돌이 된 요하네스를 가장 아끼는 침실에 모셔두고 매일 슬퍼했어.
몇 년이 흘러 왕자님과 공주님에게는 예쁜 쌍둥이 아들딸이 태어났어. 어느 날, 왕자님이 돌 조각상 앞에서 한숨을 쉬는데, 갑자기 돌 조각상이 말을 하는 거야!
"왕자님, 저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 방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쌍둥이 아기들의 목을 베어 그 피를 제 몸에 바르시면 됩니다."
왕자님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어. "뭐라고? 내 사랑스러운 아기들을?"
하지만 요하네스의 충성심을 생각하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지. 공주님도 눈물을 흘리며 동의했어. "요하네스를 위해서라면..."
왕자님이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어 아기들 목에 대려는 순간, 갑자기 돌 조각상에서 환한 빛이 나더니 요하네스가 짜잔! 하고 다시 살아났어!
"왕자님, 공주님! 두 분의 진정한 마음에 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쌍둥이 아기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방긋방긋 웃고 있는 거였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야.
그 후로 왕자님과 공주님, 그리고 충직한 요하네스와 귀여운 쌍둥이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단다. 정말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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